개인적으로 몹시 좋아하는 루나님의 소설 내일의 꽃이 드디어 인쇄 매체로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완결파일로 쭈루룩 읽은 후 괴발개발 열혈 감상문을 썼었는데요. 예전 포스트들 잘라버리면서 휩쓸려 날아가버렸었지요. 간밤에 기쁜 소식 접하고, 부랴부랴 백업파일 뒤져봤더니 다행히 원글 그대로 남아 있더라구요. 조금 쑥스럽지만, 다시 포스팅합니다.
지구로부터의 대출발 운동 이후......
지구로부터의 대출발 운동 이후, 바크티, 라우다, 배도천 등으로 달리 정착한 인류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각각 분화된 모습으로 조우한다.
이야기 내에 자세히 거론되진 않지만, 아마도 라우다인이 현재 인류의 타입과 가장 비슷한 것 같다. 그에 반해 배도천인은 체내에 자연 축적되는 천은의 힘으로 감응 능력 등의 고차원 정신력을 지닌 새로운 타입으로 분화됐다. 그런데 어쩌나. 천은은 라우다의 하이퍼드라이브 우주선의 공간도약에 꼭 필요한 촉매제인데, 장치에 사용 가능할 만큼 고농축된 천은은 일반적인 형태로는 구하기 힘들다. 이제까지는 천인이라는 생물의 체내에 축적되어 농축된 연료를 얻어썼지만, 녀석은 천천히 성장하는 생물이며 개체수도 얼마 되지 않는다. 공식적으론 거론되지 않지만, 천인에게서 얻을 수 있는 연료가 고갈 될 때 대안은 배도천인의 체내에 축적된 천은 뿐이다. 배도천인들은 생존을 위해 라우다와 끊질긴 전쟁을 벌이지만 결국 패하고 만다. 이제 희망은 늦기 전에 대체 연료를 구하는 것 뿐이다. 거기에서 내일의 꽃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니, 인류가 아무리 잔인하기로서니 고작 공간도약을 위해 대출발 운동 이전에 동인류였던 존재를 물화할까, 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부디 놀라지 말길. 배도천의 형유와 라우다의 탐사원들이 대체 천은을 찾기 위해 당도한 바크티의 참상은 한 층 더 놀랍다. 정확히 어떤 참상인지는,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 이쯤에서, 생략.
내일의 꽃을 쓴 루나님은 약학 연구원이시다. 우리가 스스로의 안위를 위해 타생물에 얼마나 가혹한지 뼈속까지 아시는 분이고, 덕분에, 이렇듯 일반인이 감히 상상하기 힘든 영역을 소재로 훌륭한 이야기를 창작할 수 있지 않나 싶다. 비슷한 소재로 쓰인 이식과 숲으로도 몹시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이식은 아름다움의 완성을 위해 점점 심한 살생에 몰입하는 잔인한 인간에 대한 단편이다. 숲으로는 한낱 종이 한 장 차이로 만물의 영장이 된 현인류가, 의학 실험용으로 쓰는 등, 구인(舊人, 현인류와 99.98% 동일한 유전자 서열을 가졌다.)을 잔혹히 다루는 단면을 짤막한 재판을 통해 보여주는 단편 소설이다. 아마도 내일의 꽃은 두 단편의 키워드, 이기적 생물의 욕망과 잔혹함이 서로 아우러지며 확장된 영역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작가의 세계관이 일관성을 유지하며 점차 발전하는 모습이라니, 몹시 훌륭하다. 훌륭한 건 그뿐만이 아니다.
가끔 농담 삼아, 우리는 이과형 인간이라 이야기보다는 전체 구성에 심하게 집착한다, 라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나의 경우는 심심한 이야기에 대한 변명의 일환일 뿐이지만, 루나님의 경우, 서사의 사이사이 도저히 못질할 수 없을 만큼 꽉 짜여져 돌아가는 구성이 확실히 발군이다. 다소 심심하게 시작하지만 점차 사건이 커지고, 이전의 사소하게 보였던 에피소드들이 거대한 줄기의 단서가 되어가는 형태가 읽는 이의 흥미를 자극한다. 마치 라벨의 볼레로를 들으며 점점 웅장해져가는 음색 속에 심장이 뛰는 감각과 비슷하다. 거기에 관해, 짧은 문학 소견으로 그럴듯하게 이론적인 표현을 못하는 게 못내 아쉬울 뿐이다. 집착해서 저리 훌륭한 구성이 나올 수 있다면, 그 정도는 심하면 심할수록 더 좋지 않을까. ^^
물론 이렇게 훌륭하고 재미있는 글이지만 아쉬운 점이 영 없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훌륭한 장르 소설의 요건 중 첫 번째로 꼽는 것이 서사의 선이 선명하고 재미있어야 된다는 거다. 루나님의 글은 대부분 첫 번째 요건에 확실히 부합한다. 그런데도 호흡이 길어지는 연재글을 읽을 경우 다음편을 기다리는 동안 흥미가 주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아마도 작은 얼개의 임팩트가 약하기 때문일 테다. 부분에 치중하느라 구성이 허술해지는 건 나쁘지만, 전체 모양을 다잡느라 부분의 아기자기함을 무시하는 것도 그리 좋진 않다고 생각된다. 쓰는 이에 따라, 전체를 해치지 않으며 부분에 임팩트를 주는, 각자 고유의 전략이 있을 수 있겠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방안으로 꼽는 것이 캐릭터에 엽기적인 개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능력이 된다면 매력적인 개성도 나쁘진 않을 테고. 루나님의 캐릭터들은 대부분 지적이고, 몹시 이성적이며, 똑바르다. 가끔 이성을 상실할 때도 있지만, 그 순간에도 윤리적인 부분에 고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막 나가는 인물에 비한다면 그쪽이 더 낫지만 적절히 불완전한 것도 좋지 않을까. 예를 들어 깊은 밤 보는 눈 없을 때의 B 사감의 반전 인격처럼 말이다.
아쉬운 점이라 표현했지만, 사실 억지로 끌어낸 허점에 가깝고 전체의 훌륭함에 비한다면 언뜻 드러나는 부분도 아니다. 그저 루나님의 필력이라면 이보다 더 완전해질 수도 있겠다 싶어 굳이 딴지를 거는 거라 해두자. ^^;;; 현재 루나님의 글은 아마도, 인터넷 어디에도 공개된 곳이 없다고 알고 있다. 이건 정말 잘못! 이다. 혹시 이 포스트를 읽고 내일의 꽃이 읽고 싶은 분이 있다면, 대놓고 항의를 해주길 바란다. 아울러 상심한 연인들을 위한 발라드, 태양의 동쪽 달의 서쪽, 그 달의 노래를 기억해, 파랑새, 이식, 숲으로 등등도 모두 공개해 달라고 요구하자. 루나님의 글을 몹시 좋아하는 팬 중 한명으로서 훌륭한 소설들이 꽁꽁 묻혀 있는 것이 못내 아쉽다.
덧) 내일의 꽃은
Fantastique Vol.4부터 지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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