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출범한 한국바둑리그에서 한게임바둑팀은 당시 겨우 2단이던 15세 소년을 2장으로 뽑는 강수를 두었다. 바로 요즘 제일 말 많은 강동윤8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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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동윤 사범의 단위가 9단이다, 8단이다, 말이 많은데 아직은 8단이 맞다. 명인전 결승 진출로 최소 한 단위 특별 승단이 확정적이긴 하지만 정식으로 그 수혜를 입는 건 대회가 모두 마무리 된 뒤라고 한다.
비슷한 경우로 2004년 최철한 9단의 예가 있다. 당시 8단이던 철한 사범은 2004년 9월 응씨배 결승에 진출하며 최소 한 단위 특별 승단이 확정되었다.
하지만 결승전은 12월(1-2국)과 이듬해 3월(3-4-5국)이라 대회가 끝나기 전까진 몇 개월이고 8단 단위를 유지해야만 했다.
물론 그게 지겨웠는지 그 보다 먼저 승단 점수를 채워 최고 단위 입신이 돼 버렸긴 했지만 말이다. 하여간 그런거다.

그 한게임바둑의 주장이 바로 세돌 사범님이라 대체 뉘신지 모르겠지만 어찌 어찌 2장씩이나 된 어린 동윤 사범을 무턱대고 예뻐라 했었다. 그 해 동윤 사범의 시즌 성적은 4승 3패로 조한승, 원성진 사범 등 쟁쟁한 2장들 속에서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둬 응원하는 이들을 뿌듯하게 해주었다. (원년 한국바둑리그는 오더제가 아니라 딱 자기 위치에서 4-3-2-1장 순서대로 나와서 다소 심심한 방식으로 대국을 했었다.)

그리고 챔피언 결정전.
첫째날 시즌 전승으로 한게임바둑팀의 정규리그 1위에 견인차 노릇을 톡톡히 하던 류재형 사범님이 무너져 버렸다. 이틀째, 시즌 막판 연패로 불안하던 홍민표 사범님 역시 패배.
사흘째, 드디어 동윤 사범님이 등장했지만 중반까지 흔들흔들 패색이 짙었다. 그때 나의 기력은 18급도 될까말까할 때라 TV로 중계 해설을 듣고 보지 않으면 뭐가 뭔지 도통 모를 때였다. 그런데도 그 판은 볼륨을 죽이고도 어느 쪽이 좋은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연신 망설이듯 돌을 놓는 동윤 사범의 표정이 워낙 안 좋았기 때문이다.
아, 시즌 내내 압도적으로 1위였는데 챔피언결정전까지 와서 4위 팀에 우승을 헌납하고 마는구나. 하고 생각할 때였다. 갑자기 해설자의 어조가 높아지더니 파크랜드팀의 안조영 사범님이 실착을 했다고 구구절절 설명을 하신다. 뭐, 봐도 모르지만 상황이 급박해진 건 확실했다. 그 어린 동윤 사범님의 자세가 아주 침착해지고 돌을 놓는 손길에 주저함도 사라졌다. 그리고 역전! 휴. 세돌 사범에게 무사히 바톤이 넘어갔다.
결과는 모두 알다시피 한게임바둑팀이 한국바둑리그 원년 우승을 하였다.
그 우승에 대해 말할 때 대부분 젤 먼저 떠올리는 게 세돌 사범의 챔피언결정전 2승이다. 하지만 동윤 사범이 그대로 패해버렸다면 세돌 사범은 아예 등장 기회조차 잡지 못 했을 거다. 그런데도 잘 거론조차 안 되는 조연일 뿐이라니 어찌 억울하지 않겠는가.
단순한 나는 그게 참 아까웠고 이후 어떤 바둑을 두든 동윤 사범을 응원하기로 했다. 시즌 내내 귀여운 2장 예쁜 동윤 사범이라고 가끔 바둑 이야기를 할 때마다 재미 삼아 주워대긴 했지만, 정말 팬이 되어 응원을 한 건 원년 한국바둑리그 챔피언결정전 이후, 그러니까 2005년 1월 이후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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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팬이 되고 보니 세돌 사범과 동윤 사범은 참 닮은 점이 많다.
바둑 두는 손 모양, 마른 몸집, 정확 기민한 수 읽기 능력, 원하는 판이 짜이지 않을 때 쉼없이 판을 흔들어대는 집념,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스트레이트로 잘 치는 말빨까지도.
세돌 사범의 경우 지금이야 바둑팬들 사이에 애정(?)과 호응을 두루두루 받고 있달 수 있다. 하지만 한창 성적을 내기 시작하던 초기엔 톡톡 튀는 발언이 연일 바둑 언론에 오르내리고 이기든 지든 긍정하는 팬 반에 비꼬고 욕하는 안티 반이었다. 다행인건 (어디까지나 사견이지만) 인터넷을 잘 안 하시고 아마도 자신에 대한 타인의 의견 따위 안중에도 두지 않는 성품인 듯도 하여 그닥 상처를 받진 않은 것도 같다. 하지만 그렇게 극히 독립적인 인격을 가진 이가 어디 흔하겠는가.
어디 사는 누구인지, 나이는 몇이나 먹었을런지, 타인에게 가차 없이 돌을 던질 만큼 과연 본인은 그리 똑바른지, 대체 정체 파악도 할 수 없는 다수에게 악의 짙은 막말을 쉼없이 들어대는데 아무리 튼튼한 신경을 가진 이래도 전혀 타격받지 않긴 힘들 것이다. 심지어 바둑에서 지고 삭발 한 것까지도 까임의 이유가 되는데 어디 무서워서 숨이나 쉬고 살 수 있겠는가.
튀어나온 못이 정 맞는 건 어느 곳에서건 있는 일이지만, 유독 바티즌 중에 튀는 '아이들' 특히 막 성적 내는 기재들의 튀는 언행들에 보통 이상으로 진저리 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뭐, 거기에 대해 분석하고 비판하고 어쩌고 하겠다는 건 아니다.
단지 아직 만 스무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 기사에게 가혹하다 싶은 말들이 많아 자주 불편했었고, 가끔 동윤 사범 미니홈피의 심상치 않은 '쥔장 한마디'가 응원하는 이의 심정을 많이 시리게 했었다는 것만은 짚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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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제10회 농심신라면배 1차전(1~4국)이 베이징에서 벌어졌다.
농심신라면배는 한,중,일 3개국 국가대항 바둑대회인데 먼저 나와 이기는 기사가 상대를 바꿔가며 계속해서 바둑을 둬 나가는 연승 방식으로 대회가 치뤄진다. 천운이 따른다면 반짝 스타 한명이 대회를 끝내버릴 수도 있는 형태라 국가대항전임에도 개인플레이가 자주 부각대곤 한다.
결과만 말하자면 1차전의 스타는 누가 뭐래도 중국의 퉈지아시 3단이다. 이름도 생소한 중국의 1장이 반짝 4연승하며 한, 일의 대표를 각각 두명씩이나 요절 냈으니 거기에 더 토 달 것도 없다. 하지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경쟁국 신예의 빛나는 모습 만큼 꼴 보기 싫은 게 또 있을까나.

하지만 짜잔.
우리에겐 강동윤 8단, 그러니까, 귀엽고 예쁜 동윤 사범이 있다.
그동안 동윤 사범이 까임을 당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가 국내전에선 깽판(?)을 잘 치지만, 국제전 성적은 형편 없어 완전 허당 영양가 없다는 거였는데, 이제는 그런 소리 따위 쏙 들어가게 제 실력 발휘할 때도 됐다 싶었다.
제1회 WMSG(세계마인드스포츠게임즈) 남자 개인전에서 우승하고 국내 기전에서도 명인전과 천원전, 무려 두 개나 결승전에 진출해 있는 상태라 마침 분위기도 최상이었다.

11월 24일, 드디어 농심신라면배 2차전(5국~10국)이 시작되었다. 예상대로 동윤 사범이 2차전 선봉에 나섰다.

5국,  대 퉈지아이 3단(중국)에 흑번으로 1집반승. 이제 1승이지만 단지 1차전 스타를 침몰 시켰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빛나는 한판이었다.
6국, 대 야마다 기미오 9단에 흑 불계승. 이제 슬슬 연승에 점화 시작!
7국, 대 박문요 5단(중국)에 흑 불계승. 최근 한, 중, 일 신예들 중 국제 대회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던 나름 경쟁자를 물리쳤다.
8국, 대 하네 나오키 9단(일본)에 흑 불계승. 3년전 농심신라면배에 데뷔하자 말자 패배를 안겨준 상대에게 나름 빚을 갚아 주었다. 이쯤에서 흑번필승 구도가 지겨워졌는지 이제 슬슬 백을 잡고 싶다 말한다. ;;
9국, 대 치우쥔 8단(중국)에 흑 불계승. 5연승은 농심신라면배 최다연승 타이 기록이다. 다시 한번 다음 판엔 백을 잡고 싶다고 하지만.....
10국, 대 다카오 신지 9단(일본)에 백 불계패. 드디어 원하던 백번을 쥐었지만 패했고 연승 신기록 도전에도 실패 했다.

2차전 마지막 판을 패로 마무리한 게 아쉬울 뿐 기대 이상의 선전이었고, 덕분에 한주일이 행복했다.
무엇보다 기뻤던 건 그 한주일 동안의 바둑기사 댓글에 동윤 사범에 대한 악평이 없었다는 것이다.
역시 소설가는 소설로 말하고, 음악가는 음악으로 말하고, 바둑 기사는 대국 내용과 결과로 말할 뿐인가보다. 그렇다면 성적이 나빠지면 다시 욕을 먹게 되는 걸까.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분위기 참 만족스럽고, 세돌 사범이 그랬던 것처럼 동윤 사범 역시 제 자리 굳건히 다져 더 이상 안티 따위 입(손가락) 못 놀리는 분위기가 되면 좋겠다.

동윤 사범은 현재 명인전과 천원전 결승에 올라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 상대가 모두 세돌 사범이다. 두 사범 모두를 응원하는 팬 입장에선 참 난감한 상황이기도 한데, 뭐, 누가 이기든 기쁘니 나름 행복하달 수도 있겠다.
고백하자면 3년 전까지만 해도 두 사범에 대한 팬심의 추가 한 쪽으로 많이 기울어 있었다.
농심신라면배 대표 선발전 조 결승 4강에서 두 사람이 맞붙어 동윤 사범이 반집승 했다는 뉴스를 본 순간, 울컥 신물이 넘어와 당황 했을 정도였던 거다. 어떤 분의 표현에 의하면 기재와 기재가 맞붙어 상상도 못할 만치 복잡하고 멋진 명국이 나왔다는데, 역시 세돌 사범은 농심신라면배랑 인연이 없는 건가, 싶으니 상대가 동윤 사범이래도 얄미워졌다.
그런데 얼마 후 동윤 사범의 미니홈피에 가니 대체 어떻게 이겼냐는 누군가의 물음에,
"수가 안 보여 교를 써 겨우 이길 수 있었지."
라고 재치 있는 답변이 달려 있지 않은가.
우와, 그걸 보는 순간 얄미워하던 마음이며 역시 '세돌 사범이 still my No.1'이라는 생각까지 모두 사라져버렸다.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나의 No.1 기사를 이겼다는데 뭐가 그리 아쉬워 속 쓰려 했을까.

그 얼마 후 중국의 신예 천야오예 9단이 국제 대회에서 승승장구하다가 급기야 세돌 사범에게까지 판맛을 보았다. 그에 비해 비슷한 나이의 우리 나라 신예들은 아직 국제 대회 성적이 변변찮아 다들 아픈 배를 문지르고만 있을 때였다. 거기에 세돌 사범은 천야오예가 잘 두긴 하지만 동윤 사범도 그에 못지 않다며 앞으로 국제대회가 재밌어질 거라는 발언을 해 일부 바티즌들을 설레게 했었다.
그 뒤 3년이 지난 지금. 아마 제10회 농심신라면배 2차전은 그 때 세돌사범의 말대로 되어가는 전초가 아니었을까.
이번 명인전과 천원전의 결과가 어떻든 동윤 사범이 성적을 내는 한 두 사람은 계속 높은 곳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부디 그 내용이 아주 치열하고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높은 수준이길 바란다.
예전에 조훈현9단과 이창호9단을 상대하며 우리 나라 신예들이 간을 키워(?) 큰 물에 나가서도 전혀 떨지 않고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처럼, 세돌 사범이 그들이 했던 역할을 하고 동윤 사범이나 다른 출중한 어린 기사들이 그 수혜를 입는다면 그만큼 멋진 일이 어딨겠는가.
이번에야 말로 100% 진정을 담아 말 할 수 있겠다. 앞으로 어떤 바둑을 두든 계속 동윤 사범을 응원할 것이라고.

농심신라면배 2차전이 있던 지난 한 주 내내 정말 행복했었다.
명인전과 천원전 결승 번기가 있는 이 달도 계속해서 즐겁고 행복 할 것 같다.
2009년엔 세계대회에 나서는 동윤 사범의 모습을 좀 더 자주, 오래 보기를 바란다.
언제나 good luck~
2008/12/01 23:38 2008/12/01 23:38
벨벳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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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구름비 2008/12/02 11:24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욱심(?)을 잘 수습했구려.
    바둑에 대한 애정이 물씬물씬 느껴지는 글이여 ㅎ

    • 벨벳 2008/12/02 12:58  편집/삭제  댓글 주소

      엉 수습하기 어려웠지. 하여간 열받을 땐 좀 시간 두고 정리해 보는 게 제일인 듯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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