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히 감상을 말하라면 일단 좋았다, 가 되겠지만 공연 외적으로 나빴던 점들이 워낙 많아서 똑 부러지게 공연평 하기도 참 힘들다. 주절주절 늘어놓을 군소리가 워낙 많아서.
프로그램 첫번째 곡인 드보르작의 슬라브무곡은 클래식을 좋아하게 된 출발점에 있는 곡이라 실황으로 꼭 한번 들어 보고 싶었다.
말하자면, 그 곡 때문에 '고민도 않고' 공연 예매를 했었다고도 할 수 있는데.... 아뿔사, '네 손을 위한' 이란 부분을 완전히 간과해버렸다. 고민도 않고 예매 해버렸으니, 뭐.
내가 가지고 있는 슬라브무곡 앨범은 카라얀과 베를린 필의 오케스트라 버전이다. 특히 1번 c장조는 타악기와 현악기의 화려하고 아주 '센' 어울림이 압권이라 듣고 있음 귀와 정신이 시원하게 뚫리는 기분이 든다.
거기에 익숙해 있던 차에 난데 없이 피아노 연탄곡으로 슬라브무곡을 들으니 뭐 저런 귀여운 곡이 다 있나 싶더라.
하지만 그 부분은 어디까지나 나의 취향 문제일 뿐이고, 연주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악보 넘기스트의 첫번째 페이지부터의 실수가 아주 인상적이라 연주 내내 두 피아니스트보다는 넘기스트 언니에게 더 집중하게 되더라나.
그리고 드디어 강동석님이 등장하고, 아렌스키의 피아노 트리오가 시작됐다.
매일 출퇴근 길에 끼고 들을 정도로 클래식을 좋아한대도 편식이 워낙 심하다. 가 아니고. 편식이 심하다기 보다 베스트 음악가들의 곡들 위주로 듣고 듣고 또 듣는 타입이다. 그런데 그 베스트 음악가들이 클래식계의 '대중 스타'랄 수 있는 분들이고나 할까. 이것 저것 공부하고 시도할 만큼 매니악한 취향은 아닌 거다. 그러니 아렌스키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가의 경우라면 완전 깜깜, 국적이니 대표곡 같은 기본 정보는 커녕 이름조차 모르는 게 당연한 게 되겠다.
근데 인연이 있으려는지 바로 지난 주 토요일에 갔던 피아노 듀오 콘서트에서 아렌스키의 피아노 모음곡 1번을 들었더랬다. 평소 피아노에 대한 인상이라면 음색이 워낙 청순해서 듣고 즐기기엔 심심한 악기라는 건데, 공짜라고 간 공연이 나름 대박이었다. 그 이후 이번 주 내내 출퇴근 BGM 곡이 바로 아렌스키의 피아노 모음곡 1번이 됐을 정도이다.
과연 피아노 트리오는 어떨까나, 아주 두근두근하면서 연주를 들었다. 넘기스트 언니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실수를 해주시는데, 한층 레벨업 해서 두장 한꺼번에 넘기기 신공을 보여주신다. 하지만 나의 베스트 악기 바이올린이 함께 연주되고 있는 만큼 이제 그쪽으로는 관심도 가지 않았다.
저게 그 과르넬리일까나.
역시 내 취향엔 바이올린이 최고구나.
그런데 예습을 안 했더니 곡이 좋은지 나쁜지도 모르겠구나.
오직 바이올린 소리만 들리는구나.
연주가 격해질때마다 찰랑찰랑 흔들리는 머리채까지도 멋있어 보이는구나.
그저 행복하고 즐거울 뿐이구나.
저딴 생각을 하며 아주 푹 빠져 있었다. 그런데 헉. 뒷 자리에서 누군가 박자에 맞춰 까딱까딱 의자를 차기 시작했다. 슬슬 열이 뻗치려는 차인데 옆의 옆 자리에 앉은 초딩 하나가 졸다가 슬쩍슬쩍 코 고는 소리를 낸다. 대체 웬 날벼락이냐 싶더라.
부글부글 끓는 속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연주에 집중하려 했지만 이미 빈정이 상할대로 상한 상태.
가끔 들리는 헛기침 소리도 신경 쓰이고 옷자락 스치는 소리, 악장 사이에 박수 치는 사람들, 그 추운날 제대로 난방도 안 해주는 부산시설관리공단.... 오만 것에 다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어딘가엔 발산하지 않으면 신물이 멈출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인터미션 안내가 나오자 말자 잽싸게 돌아보며 도끼눈을 치떴다. 딱 B사감 버전으로 대체 누가 앞 의자를 차는 거냐고 따졌더니 아줌마들 표정이 대번 나빠졌다.
아, 적당히 하고 끝내야지. 길게 하면 되려 피박 쓰겠다는 감이 바로 왔다. 고로 딱 잘라 할 말만 하고 잽싸게 바로 앉아버렸다.
뒷 자리 아줌마들은 그게 억울했는지 10분 내내 대체 쟤 뭐라고 말한거냐며 나름 토론(?)을 벌이시더니 연주자들이 입장하기 직전에 화장실 간다며 그 중 반수가 나가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좀 미안하기도 하지만 다시 그런 상황이 오더래도 딱히 행동이 바뀔 것 같진 않다. 타인과 함께 즐기는 장소에서 공중도덕 따위 무시해 버리고 저 혼자 흥에 겨워 오버하는 것 따위 이해해 줄 수 없지 않겠는가.
하여간 한번 파르르거린 덕분인지 더 이상 의자의 진동을 느끼지 않고 브람스의 피아노 4중주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 동안 듣던 것보다 연주 템포가 굉장히 빠르고 음색이 화려하다. 나로선 그 쪽이 더 좋긴 한데, 알던 곡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르게 느껴져 다소 당황스럽기도 했다.
사실 강동석님에 대해선 잘 모른다. 그에 대해 아는 거라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TV 커피 광고에 나왔을 정도로 당시 최고 인기 클래식 음악인이었다는 게 전부. 그렇게 인상이 강했지만 앨범 하나 사본 적 없고 당연히 들어본 연주곡도 없다.
연주자 편식도 워낙 깊어 평소 즐겨 듣는 쉐링, 장영주, 정경화에서 잘 벗어나 지지 않는다. 남들 다 좋다는 하이페츠의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도 뜨악했을 정도이니, 뭐.
강동석님의 연주는 아렌스키 때의 느낌으론 쉐링 쪽 같다 싶었는데, 브람스 피아노 4중주에선 완전 느낌이 달라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하여간 신나긴 되게 신났다. 특히 하이라이트랄 수 있는 4악장에 들어서니 첼로 조영창님과 시선을 주고 받으며 슬쩍슬쩍 미소를 보일 정도로 연주하는 본인도 꽤 만족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또 사고가 터졌다.
4악장 중에 악보를 넘겨야 되는 부분에서 마침 템포가 달라지게 되었는데, 어디선가 용자 한분이 아주 열성적인 박수를 쳐대기 시작했다. 곧 이어 우레와 같은 박수가 뒤따랐다.
내 없는 글 솜씨로는, 그저, 뭥미, 라는 외에 그 순간의 썰렁함을 설명할 방도가 없다.
그 추운 공연장에서 차가운 손으로 열심히 연주하던 분들에게 웬 얼음물 세례란 말인지.
다행히 연주가 끊기진 않았고 그대로 마지막까지 이어져 무리없이 마무리 지어지긴 했지만, 하필 마지막 악장에 그런 일이 터져 전체적인 인상을 제대로 망쳐버렸다.
그쯤되니 막가자는 건지, 첫번째 커튼콜 중에 어디선가 카메라 플래쉬가 번쩍였다. 두번째 커튼콜이 끝나니 절반 이상이 일어나 퇴장하기 시작했다.
아아, 앙코르는 물 건너 가버렸다.
원래 그 분들 스타일이 앙코르는 무시하는 류일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끝이 나빠 영 개운치가 않았다.
대충 전말이 저러했다. 그러니 그런 거다.
간단히 감상을 말하라면 일단 좋았지만, 공연 외적으로 나쁜 구석이 워낙 많아 똑부러지게 공연평 하기가 힘들다고.
이렇게 줄줄 늘어놓으니 당시 현장에서의 감정 굴곡이 되살아나 참 심란하고 아쉽기 그지 없다.
문화 불모지 부산에서 저리 좋은 프로그램의 공연 자주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하여간, 길게 투덜댔더니 좋게 마무리 하는 것도 쉽지 않고 기분 나아지는 곡으로 정화 작업이나 해보자.
바로 이번주 출퇴근 시간의 BG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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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비 2008/11/24 14:51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그래두 무사히 잘~ 다녀왔군하.
예습 안한 충격이 좀 있었나본데? ㅎㅎㅎㅎ
아렌스키 잘 듣구간다. 내가 피아니스트님께 '아렌스키'가 좋았다고 했더니 자기두 무척 좋아하는 곡이라며 무지 좋아하더라궁
벨벳 2008/11/25 20:58 편집/삭제 댓글 주소
엉 역시 뭔 장르든 콘서트 갈 땐 예습이 필수인겨.
그 분도 아렌스키 좋아하는구나. 담에 또 뵈면 그때 초청 감사하다고 좀 전해주게나. 진작 해야 되는 인사를 잊어묵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