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산동~철마~기장 : 약 22km. 5시간여 소요
거의 운동 신경 0에다가 타고난 게으름 덕분에 야외에서 하는 활동 되게 싫어한다. 하지만 이어폰 틀어 끼고 혼자 잡생각하며 설렁설렁 걸어다니는 건 꽤 좋아한다.
일전에 친우 M 언니가 국토대장정에 참가해 도보로만 우리나라를 종단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게 부러웠나 보다. 어느날 보니 나도 비슷한 코스로 도보 여행을 하리라 다짐하고 있더라. 하지만 회사를 그만두기 전엔 불가능한 일...
이긴 한데, 뭐, 당장은 아니지만 언제간 그만둘 회사다. 갑자기 시간이 날때 어리버리 시간 잡아 먹고 그제야 준비한다고 설쳐대느니 미리미리 준비하자 싶어 인터넷 도보 카페에 가입했다. 괜찮은 코스 나오면 잽싸게 따라 붙어야지 눈치만 보기 두어달.
드디어 어제(11월 16일) 카페 오프라인에 공식 데뷔 하였다. V
남산동서 출발 후 꽤나 예쁜 길을 지나쳤는데 몸도 덜 풀린 상태로 나름 적응 작업을 하다보니 한참 뒤에야 첫번째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저기가 대체 어딘지는 모르겠다.
모처에서 단체 사진도 한방 박고 사람들 꽁무니만 꾸역구역 따라서 걷다 보니 물가에 예쁜 마을이 나왔다.
금정구 일대의 식수를 책임지는 회동수원지라고 한다.
찍사의 솜씨가 워낙 별로라 사진으론 느낄 수 없겠지만, 보는 순간 눈이 시원해졌다.
왜, 일전에 운하 논쟁이 한창일때 물 보고 기분 나빠지는 사람이 어딨겠냐고 말하던 사람이 있었다잖은가.
물론 운하는 좀 그렇지만, 저 마을을 보니 물가가 좋긴 되게 좋더라. 예쁜 꽃을 보면 꺽어서 내 책상 위에 꽂아 두고 혼자 보고 싶은 것처럼, 저 마을을 보니 돈 많이 벌어서 저기다 별장이라도 짓고 싶는 뻘 생각까지 들 정도.
하지만. 자연보호 & 수자원보호구역 존중. 뻘 생각은 머릿속으로만 하고 마는 거다.
수원지를 지나 저렇게 편안하니 잘 닦여진 길이 길게 이어졌다.
주황색 셔츠의 여자분은 파파야님. 걷는 내내 곁에서 친절하게 많은 말씀을 해주셔서 22km 다소 긴 여정이 지루하지 않았다. 감사하신 분. 다음에 또 친한척 해주세요. ^^
그리고 금정구를 지나 기장군으로 들어서자 비포장도로가 이어진다.
시골 비포장 도로 나름 운치가 있어 좋긴 한데 차 한대 지나칠 때마다 흙먼지가 장난 아니다.
몇 번이고 콜록대다가 마스크를 사자, 마음 먹고 보니.
힙쌕은 오래 걷기에 좀 아닌 것 같구나, 20-24L쯤 되는 배낭도 하나 사자, 앗, 장갑이랑 방석도.... 끊임없이 살 목록을 만들어 돈 쓸 계획을 세우며 무아지경에 빠지다가 곧 제정신이 돌아왔다. 잠시 지름신이 내렸었구나. 이게 다 흙먼지 이는 나쁜 길 때문이다, 싶지만.
시골길 아니면 어디 길가 배경이 저토록 훌륭하겠는가. 사람이 긍정적으로 살아야지, 하며 스스로 설득했다.
하지만 곧 저런 길에 접어들었다.
제대로 된 보행도도 없는데다가 쌩쌩 달리며 뿜어내는 자동차 매연이 되게 거슬렸다. 슬슬 다리도 무거워지고, 불편한 힙쌕 때문에 어깨며 목 뒤의 통증이 신경쓰였다. 거기에 더해, 배 속에서 난리가 났다.
말 그대로 배 고파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앗, 드디어 철마 읍내 도착. 저어기 이정표에 철마초등학교가 보인다. 점심 먹는 곳이다!
카페 회원님들 중 솜씨 좋은 주부님들이 많아서 도시락이 꽤나 볼만 했는데 빈 속 채우느라 여력이 없어 촬영은 생각도 못 했다. 자랑하고 싶었는데 아쉽다.
주린 속 달래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간단히 물양치까지 하고 나니 다시 인간이 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나머지 코스는 중간 집결지 직전에 지나 온 그 별로였던 차도 모양으로 쭉 이어져 있다는데 거길 또 어찌 걷나 슬슬 걱정이 되었다. 모두들 같은 생각이었는데 몇 마디 논의가 오가다가 베테랑 회원님 한분이 우리 모두를 구원하는 제안을 하셨다.
테마임도로 가자!
조금 돌아가고 잠시 비탈도 있지만 차 없고 경치 훌륭한 길이라는 데에 모두 코게 꿰었다.
부산시 외곽 중에서도 가장 낙후한 마을 철마. 그 철마에서도 꽤나 구석에 있는 이곡 마을 회관 앞이다.
경치 훌륭하다는 임도로 접어드는 초입이라선지 회관 주변 나무들도 제법이다. 가운데 밑둥 두꺼운 나무는 꽤나 수령이 된 무슨 무슨 보호수라는데 저까지 안내판 보러 갈 정도의 여력도 없어 그냥 사진만 한방 박고 말았다.
임도로 진입하는 등산로 풍경이다.
하여간 사람 생각은 다 거기서 거기인지, 나 같이 불순한 생각 가진 누군가가 저기다가 별장을 다 지어놨다. 대체 저기 건축허가는 어찌 났을까나, 왕년 직업병이 잠시 도졌지만.
곧 시작된 편두통 때문에 생각 따위 다 관둬버렸다.
드디어 그 말 많던 임도에 들어섰다. 이제 저런 코스를 걸어야 된다.
우리 동네 산 속에 저런 길이 있을진 상상도 못 했다.
기장군의 자랑이며 일대에서 2002년 아시안게임 MTB 경기도 했다는데, 왜 몰랐을까나. 뭐, 내가 모르는 게 한두 개겠냐만, 저렇게 좋은 데를 모르고 있었다니 억울할 정도이다.
곳곳에 저런 샘이며 벤치, 운동기구가 있고 화장실도 잘 갖춰져 있다.
문제라면 이제 편두통이 심해지다 못해 구역질이 나올 지경이라 저 좋다는 길 감상도 못하고 흐느적흐느적 무조건 걷는 데에만 집중했다. 얼마나 집중했냐면, 도보 초보자 주제에 선봉에서 길 안내 하시던 아름다이님 바로 꽁무니에 붙어서 같은 속도 유지 했을 정도. 길가에 나무도 안 보이고 사람들 이야기 소리도 안 들리더라.
저기 어디엔가 종착지가 보인다.
야호, 하고 외쳐줘야 될 것 만 같은 풍경이지만, 얼른 얼른 완보하고 집에 가서 퍼져 버려야지 하는 생각 뿐이었다. 이제 사진 찍는 것도 고역이라 똑딱이도 집어 넣어 버렸다.
임도를 빠져 나온 뒤에야 겨우 정신 차리고 기념 사진을 찍었는데, 아직 제정신이 아니라 손이 무진장 흔들렸다.
그리고 기장.
마지막 집결지 기장역은 야경 모드로 바꿔 찍었어야 됐었지만, 그럴 정신이 어딨겠는가. 그 상태에 저만하면 훌륭한 사진이라고 우겨볼 테다.
22km 남산동~기장 코스,도보 데뷔전 치고 꽤 난코스였다. 막판에 컨디션까지 나빠져 눈이며 입이며 한일자 모양으로 만들어 나름 꼴값을 떨기도 했지만, 어쨌든 리타이어 하지 않고 완보를 하였다는 데에 일단 만족한다.
하지만 함께 했던 다른 분들까지 그리 생각해주었을지는 모르겠다. 아무쪼록 예쁘게 봐주셨길 바라며.
마무리는 운영자님과 공식 찍사님께서 찍어주셨던 사진 두 장.
저기 어딘가에 나도 찍혀 있다. 물론, 찾는대도 딱히 상품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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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비 2008/11/17 16:42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단체 사진 보니 힘들었나보다 싶넹. 얼굴이 굳었소~~
그래도 대단혀~!!
벨벳 2008/11/17 18:00 편집/삭제 댓글 주소
단체사진은 거의 출발 즈음 찍은 건데, 힘들어서가 아니라 초반 긴장 때문에 많이 굳었던 거지.
저런데는 좀 힘들고, 적당히 짧고 경치 좋은 길 있음 담에 우리끼리 걸어보세나.
인스마스터 2008/12/08 21:08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좋은 취미를 두셨습니다^^ 혹시 김남희씨의 걷기여행시리즈 책을 읽어보셨나요?
걷기를 좋아하신다면 추천할게요.
벨벳 2008/12/08 22:36 편집/삭제 댓글 주소
네, (소심, 겁보, 까탈)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시리즈요. 제 자매도 그 책 추천해주더라구요. 지금 1권 읽고 있답니다. ^^